‘세비야 출신’ 대전 신인 김영승의 라 리가 도전기!

  • 입력 2014.02.12 09:47
  • 수정 2014.02.12 09:47


엘도라도의 문턱까지 올라갔던 축구 천재가 있다.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김영승(21·대전) 이야기다.

김영승은 청소년 대표팀 축구를 즐겨본 팬들이라면 얼핏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0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U-16) 선수권에서 그는 한국의 오른쪽 수비를 맡았다.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가 왼쪽, 김영승이 오른쪽에서 뛰었다. 당시 한국은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2009년 U-17 월드컵에도 나가 팀의 8강행을 도왔다.

2010년 김영승은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스페인 세비야CF에서 입단테스트를 봤다. 그리도 당당히 통과한 뒤 스페인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나갔다.

한 네티즌은 김영승의 사진을 올려놓고, 특급 유망주라고 소개했다. 후베닐A(19세 이하 팀)에서 23경기에 나와 34골을 넣고 14도움을 올렸다는 다소 과장된 소식을 전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세비야를 이끌던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이 김영승을 직접 1군으로 불러 “재능이 넘치는 선수”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1군과 세비야 B팀(24세 이하 팀), 후베닐A를 오가며 실전과 훈련을 거듭했다.

스페인에서 황금빛 인생을 그렸던 그가 2013년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그리고 2014년 K리그 챌린지(2부 리그)로 강등된 대전 시티즌에 5라운드 6순위로 지명돼 입단했다.

4년 사이, 축구 천재 김영승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대전 시티즌은 10일 부산과 울산을 오가며 전지훈련을 했다. 이날 오후 서면과 전화로 김영승의 세비야 도전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김영승입니다. 1993년 2월 22일생으로 만으로 21살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축구를 배우며 흥미를 느껴 울산 옥동초에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보다는 나가서 공차고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수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중학교는 용인FC 소속의 원삼중으로 진학했고, 신갈고를 졸업했습니다.

좋은 지도자 분들 밑에서 뛰어난 선배와 함께 배우며 청소년 대표팀도 하고, 200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도 출전했습니다.

신갈고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세비야에서 좋게 봐주셔서 테스트를 보게 됐어요. 유럽무대도 도전하고 싶어서 반신반의하면서 스페인으로 갔죠.

TV로 보던 선수들과 축구할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고,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비행기에서 걱정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 느낌이 좋았습니다. 따뜻하고 잔디도 좋았어요. 축구하기에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테스트를 봤는데 다들 좋게 봐주셔서 입단하게 됐습니다. 2군에서 경기도 해보고, 1군에서 훈련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통하고 혼자 동양인이다 보니 힘들었어요. 북한에서 왔냐며 멀리하기도 했고, ‘치노(중국인이란 뜻)’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적응하고 나니 친구들도 잘해줬고, 특히 세비야 1군에 있던 프레드릭 카누테(베이징 궈안)가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다들 착한 사람이었어요.

세비야 후베닐A가 2010-2011시즌 왕중왕전에서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수비와 측면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습니다.



당시 한국 인터넷에는 제가 후베닐A에서 23경기에 나와 34골? 14도움을 올렸단 이야기가 돌던데,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했으면 라 리가에 데뷔해야죠.(웃음) 그 정도는 아니었고 주전으로 꾸준히 뛴 것은 맞아요. 정확한 기록은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부상 때문에 스페인에서 꿈도 끝났어요. 후베닐A 정규리그 경기 중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해요. 공격수로 출전했었죠.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는데, 왼쪽 발등 쪽에서 ‘우드득’하는 소리가 났어요.

피로골절. 축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큰 부상을 당했어요. 세비야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줬습니다. 수술부터 재활까지 배려를 해줬죠. 현재 1군에서 활약 중인 이반 라키티치도 당시 저랑 같은 수술을 받고 같은 병실에서 재활했어요.

그런데 제 발목은 잘 안 낫는 거예요. 초조했죠. 라키티치는 금방 나아서 1군으로 올라갔는데…. 결국 전 한국에 와서 다시 수술했습니다.

알고 보니 뼈를 고정하는 핀 크기가 맞지 않았던 거였어요. 한국인과 유럽인의 뼈 크기에 차이가 있으니…. 혼자 이억 만 리가 떨어진 타지에 있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죠.

수술을 다시하면서 재활기간도 길어졌습니다. 아쉽지만 세비야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2012년 일이었어요.

한국에서도 1년 넘게 재활만 했습니다. 솔직히 힘들어서 축구를 그만 둘까도 생각했어요. 2013년 호원대에 입학해 다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드래프트를 통해 대전에 들어왔습니다. 2년 가까이 쉬었던 저를 조진호 대전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대전이 승격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저의 세비야 도전기는 일장춘몽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K리그에서도 배울 것이 많고 한 발 한 발 최선을 다하다보면 다시 그 무대를 밟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울산에서 김영승


정리=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
사진=대전 시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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